진나라의 토대를 만든 사마의
사마의는 사마방1(149~219)의 아들로 사마방에게는 총 8명의 아들이 있어 모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에 '달'자가 포함되어 있어 사마팔달이라고 불렸다.
사마랑2 백달
사마의3 중달
사마부4 숙달
사마욱 계달
사마준(or 순) 현달
사마진(or 신) 혜달
사마통 아달
사마민 유달
참고 서적 : 성호사설 제 22권
기타 참고 : 위키백과, 삼국지11(게임)
- 사마방은 하내(河內) 온현(溫縣) 사람이다. 낙양령(洛陽令), 경조윤(京兆尹), 상서우승(尙書右丞)을 역임했으며, 말년에 기도위(騎都尉)로 전임되었다. 상서우승을 맡고 있을 때, 조조를 낙양북부위(洛陽北部尉)에 추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마방은 정직하였고 공정하였으며, 질박했지만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평소에 《한서》〈명신열전(名臣列傳)〉을 좋아하여 수십만 번 낭송하였으며,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였기 때문에 저녁이 되면 문을 닫았다. 자식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에도 나아가라는 명이 없으면 감히 나아가지 못하게 했고, 앉으라는 명이 없으면 앉지 못하게 했으며, 가르쳐 질문하지 않을 때는 말을 하지 않게 하였다. 이러한 그의 가르침을 받은 아들들은 '사마팔달'로 불리며 당대의 준재로 인정받았다. 사마방은 219년(건안 24년)에 세상을 떠났다. [본문으로]
- 사마랑(171~217) : 동탁의 장안천도로 낙양이 황폐해졌을 때, 일족을 거느리고 난을 피했다. 훗날, 조조를 섬겨 당양태수, 연주자사 등 지방관을 역임하며,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217년, 하후돈, 장패와 함께 오 토벌전에 참가. 역병이 만연하자, 직접 순찰하며 의약을 나눠 주었지만, 병에 걸려 사망했다. 조예의 대, 사마부의 아들 사마망이 후계자가 되었다. 최염과 친했다. [본문으로]
- 사마의(179~251) : 제갈량의 북벌을 막아냈으며, 위나라 명제인 조예가 죽은 이후 조상과의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여 정치의 실권을 손아귀에 넣었다. 이후 손자 사마염의 진나라 건국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본문으로]
- 사마부(180~272) : 위나라의 충신으로써, 위나라 4대 황제 조모가 시해 됐을 때와 5대 황제 조환이 선양을 했을 때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며 자신의 입장을 관철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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